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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LH 부채, 서민정책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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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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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화 한국토지주택공사노조(주공)
위원장
공기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이중적이기 쉽다. 정책사업
수행에 따라 발생한 사업손실에 대해선 부실·방만 경영이라고 질책하면서, 기업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수익사업에 대해선 국민 세금으로 장사한다며
지탄한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다. 언론과 정치권이 앞 다퉈 집장사·땅장사 한다고 비난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지금은 왜 그토록 많은 부채를 지게 됐냐며 모진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부채 논란 앞서 공기업 사명·역할 이해해야
하지만 LH가 진정 공기업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채
돈벌이에만 급급했다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 많은 빚을 부담하게 됐겠는가. 선정적 언론보도와 억지스런 정치논리는 LH에 대한 오해를 양산해 내며
대중을 심각히 호도해 왔다. LH의 부채 118조원과 자신 140조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무주택 서민과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사업, 국토경쟁력 제고를 위한 신도시·산업단지사업, 불량주택을 개량·정비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도시재생사업 등
공익사업을 땀 흘려 수행해 온 소산인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러한 공익사업에 따른 혜택이
국민들에게 귀속돼 왔다는 사실이 쉽게 잊혀진다는 점이다. LH가 건설해 온 200만호의 공공주택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하며 서민들의 든든한
보금자리가 돼 왔다. 현재 LH가 운영하는 국민·영구임대주택의 수혜를 받고 있는 무주택가구만 50만호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면적 대비
1.8배에 달하는 녹지와 3.4배에 이르는 공원을 조성했고, 전국 초·중·고교 중 무려 11.4%의 학교용지를 공급했다. LH가 신도시 건설과
택지개발을 통해 건설한 도로의 총연장만 도로공사 건설물량의 1.5배에 달하고, 상수도 공급량 역시 수자원공사 대비 1.2배에 이른다.
국책사업 예산은 쥐꼬리, 나머지는 모두 LH
몫으로
공기업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바로 하기 위해선 이러한
공익사업들이 '돈이 안 되는 사업'은 맞아도 결코 '돈이 안 드는 사업'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LH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부채, 자산규모가 상징하듯 천문학적 투자비용과 장기간의 투자회수가 수반되는 대형 SOC 사업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LH가 진행 중인
사업만 해도 총 319개 지구 282조원에 달한다.
대부분 역대 정부가 국가시책으로 추진한 정책사업들이다.
문제는 명색이 국가가 시행하는 국책사업인데, 국고 집행보다 LH 자체자금으로 조달하는 사업비의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총 사업비
32조5천억원에 달하는 참여정부의 세종시·혁신도시 사업의 경우만 해도 LH의 부담액이 무려 24조원에 이른다. 반면 국고 지출은 현재까지 고작
1조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시작하고 참여정부가 확대 추진한 국민임대주택 120만호 사업 역시 총 사업비가 무려 65조원에
달하지만, 정부의 재정부담은 겨우 13%에 불과하다. 과거 노태우 정부 당시 건설했던 영구임대주택의 재정부담이 90% 이상인 것에 비해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 결과 국민임대주택 한 채당 약 1억원의 부채가 고스란히 LH의 몫이 되고 말았다.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공기업의
설움
일반 민간기업이라면 이렇듯 손실이 뻔한 사업들은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LH의 전신인 주공·토공은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위험부담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떠안아야 했다.
공기업에게 애초부터 사업 결정권이란 없었다. 주택공급호수·택지개발면적·분양가·공급시기 등 사업추진상의 기본적 의사결정권이 모두 정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아무 대책도 없이 재무역량을 대폭 초과한 경영목표를 양 공사에 일방적으로 하달했다. 2002년 475만평이던
택지개발면적은 참여정부 말인 2007년 무려 2천724만평으로 폭주했다. 같은 기간 주택사업승인호수 역시 7만호에서 14만4천호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만에 하나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기관장은
자리를 제대로 보전할 수 없었고 직원들은 경영평가에서 쓰디쓴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한술 더 떠 정부는 주공·토공에 대한 주종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양 공사의 충성경쟁까지 조장했다. 과거 무리한 임대주택 건설 독촉에 주공이 난색을 표하자, 돌연 토공으로 하여금
비축형 임대주택 50만호를 짓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정부는 공기업 운영정책의 금기사항인 사업중복마저 불사했다. 참여정부가 당초 20만호
규모였던 국민임대주택 사업을 무려 120만호로 확대하고, 2~3개 규모로 구상됐던 혁신도시도 10개로 늘리는 등 물량 본위의 국책사업에 박차를
가했던 이면에는, 정부의 강압적 착취로 고통 받는 양 공기업의 피눈물이 있었다.
무리하게 떠밀고선 이제와
책임지라니
결국 LH의 천문학적 부채의 뿌리는 부동산시장 안정과
국토균형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무리한 사업물량과 부실한 사업구조를 강제로 떠넘겼던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이에 책임 있는 당사자들은 도리어
부채의 원인을 현 정부가 추진한 주공·토공 통합으로 몰아가며 LH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획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야말로 접시를
내동댕이친 자가 깨진 접시 탓을 하는 적반하장 아니겠는가.
LH의 인력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사업물량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직원급여 역시 SOC 공기업 꼴찌를 기록한 지 오래다. LH의 재무개선을 위해 필히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정치적 이득을 위해 공기업을 뼛속까지 착취하고, 그에 대한 죗값마저 무고한 LH의 노동자에 떠넘기고 있는 정치권의 부도덕함이다. 이러한
악의 축은 방관한 채, 사업 결정권도 없이 정부의 모진 착취에 시달려 온 LH를 향해 재차 인력감축과 임금반납 등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부채 해결에 실익이 없음은 물론 왜곡된 공기업 지배구조를 고착화하는 첩경인 것이다.
LH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 '결자해지'
필요
모든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길 생각은 없다. 아니, 그럴
여유조차 없다. 전례 없는 부동산 경기침체와 유동성 위기 속에서 LH 노동자들은 피나는 자구노력 몸부림에 여념이 없다. LH는 올해 사업규모를
당초 43조원에서 34조원로, 다시 30조원으로 축소하며 뼈를 깎는 사업조정을 진행 중이다. 경상경비 10%, 원가 10% 절감에 분투하는 한편
전국의 13개 사옥도 매각할 예정이다. 노동조합 역시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판촉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추석 귀향버스
제공마저 취소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군분투한다 해도 지출을 줄이는 자구책만으론 재무개선이 담보되기 힘든 현실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지난 9월 혁신도시 부지매입비 6천100억원,
정부배당금 면제, 용산미군기지 이전 사업비 1조2천억원 등 2015년까지 총 3조3천억원 규모의 LH 재정지원안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국민의 혈세로 공기업 부채를 메운다며 비난의 포화를 쏟아 붓기도 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내용이 없다. 6천100억원은
혁신도시로 이전할 정부기관이 LH에 당연히 지급해야 할 이전부지 땅값일 뿐이다. 정부배당금 역시 LH가 수익을 실현하기 어려운 현 재무여건
속에선 어차피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용산미군기지 사업 역시 미국과의 외교·군사적 사안으로 애초부터 정부가 해야 할 사업을 그동안 LH에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세종시·혁신도시·보금자리 존폐
기로에
LH 부채 문제와 관련해 마녀사냥 식 구조조정에 치중하거나,
알맹이 없는 임시방편만 내놓는 것은 엉뚱한 동문서답에 불과하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곧 문제의 원인을 찾아 바로잡는 것 아닌가. 핵심은 바로
공기업을 봉으로 삼아 국책사업의 모든 위험부담을 전가해 온 악습을 '사필귀정' 시키는 데 있다.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국민임대주택 재정지원
비율을 대폭 제고하고, 국민주택기금 출자전환 및 상환조건 완화 등의 금융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업성이 불투명한 세종시·혁신도시도 예산증액을
적극 검토할 때다. 국회 역시 정치적 책임공방과 사업재조정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중단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LH 신용도
보강에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
LH의 재무악화는 일개 공기업이 아닌 국가정책의 위기를
뜻한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돈이 없으면 사업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세종시·혁신도시든 국민임대주택이든 LH가 수행하는 모든 정책사업이
존폐 기로에 서고 만다. 현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사업 역시 특단의 재원대책이 없다면, 역대 국책사업들이 그러했듯 차기 정권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 모든 사태에 따른 파장은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서민과 사업지구 주민의 대대적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50만호의 LH
임대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150만 입주자의 주거안정 역시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LH 부채, 수박 겉핥기는 그만할 때다. 이 중대한 국가적
문제에 대해 바로 지금 해법을 찾아야 한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곱미터(㎡)를 평(㎥)으로
썼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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